2022년 12월17일 윤석열과 김건희가 아크로비스타 주민으로부터 사진액자 선물을 받고 있다. ⓒ대통령실



“아, 됐어요. 대통령이고 뭐고 관심 없어요.” 3월24일 오후 1시경, 서울시 서초구 서초동 아크로비스타 남문 앞, 윤석열에 대한 의견을 묻자 한 주민이 차갑게 대꾸하며 지나쳤다. 윤석열의 사저로 알려진 이곳에서 그의 흔적을 찾기는 어려웠다. 2022년 3월 대통령 당선 당시, ‘아크로비스타의 자랑스러운 주민 윤석열 님, 제20대 대통령 당선 경축’이라는 현수막이 붙었던 자리는 탄핵 심판 선고를 앞둔 현재 텅 비어 있었다.


윤석열이 대통령에 당선된 직후 아크로비스 국민은행주택담보대출한도 타 주민들은 열렬한 응원을 보냈다. 취임 직전이었던 2022년 5월5일 어린이날에는 입주자대표회 주최로 입주민 아이들과 함께 취임 축하 행사를 열기도 했다. 대통령 집무 공간을 청와대에서 용산으로 옮긴 윤석열은 취임 후에도 한동안 이곳 아파트에 머물며 출퇴근했다. 아크로비스타는 한국 아파트 가운데 최초로 현직 대통령의 주소지로 기능했다. 그해 겨울 대통령 토지담보 부부가 한남동 관저로 입주하자, 이곳 주민들은 대통령 부부의 사진을 액자로 제작해 선물하는 정성을 보였다.


이 아파트에 대한 대중적인 관심도 늘었다. 부동산 매매 정보 플랫폼 ‘호갱노노’에 따르면, 이곳은 제20대 대선 직후에 전국 주간 방문자 1위를 찍었다. 호갱노노에서는 특정 아파트마다 일종의 우리은행 고금리 댓글(이야기 메뉴)을 달 수 있는데, 당시 ‘윤석열 대통령을 품은 아파트라니! 너무 부럽습니다~’ ‘이제 집값 오르겠네요’와 같은 반응이 달리기도 했다.


임기 4년 차에 접어든 현재, 당시와 같은 분위기를 느끼기는 어렵다. 부정적인 분위기의 원인은 그가 일으킨 12·3 비상계엄이다. “계엄이 말 개인회생대출가능한곳 이 되나. 같은 동네 주민으로서 창피하다. 탄핵 선고가 자꾸 미뤄져서 답답해 미칠 지경이다.” 아크로비스타 남문 앞에서 만난 한 60대 남성은 윤석열에 대해 묻자 격한 반응을 보였다. 단지 내부에서 만난 또 다른 중년여성은 “주민끼리 대통령에 대해 일절 언급 안 한다”라고 말했다. 윤석열에 대한 질문에 대다수 주민은 난색을 보였다. 강아지를 산책시키던 한 컨설팅 모녀 역시 “이웃끼리 윤석열에 관해 얘기하는 일은 없다”라고 입을 모았다.




2022년 3월 대통령 당선 당시, 이 자리에 윤석열 대통령 당선 축하 현수막이 붙었다. ⓒ시사IN 권은혜



이른바 ‘계엄형 불황’이 지속되면서 경기 침체에 대한 불만도 인근 상가에서 엿볼 수 있었다. 아크로비스타 인근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한 상인은 “(계엄령 이후) 연말 연초 장사는 다 망했다고 보면 된다”라며 윤석열에 대해 분노를 표출했다. 그는 “오죽하면 저녁 알바를 자르고, 오전 알바도 1명 뺐겠나. 환율이 이렇게 올랐으니 수입 물가도 장난 아닐 테고. 장사는 앞으로 더 안 될 것 같다”라는 말도 덧붙였다. 아크로비스타가 위치한 서초구 서초동은 서울에서도 가장 부촌으로 꼽히는 지역이다. 그러나 이곳 역시 12·3 쿠데타 이후 얼어붙은 내수 경기의 여파를 피해 갈 수는 없었다. 아크로비스타 인근에서 공인중개사사무소를 운영하는 한 60대 공인중개사 역시 이렇게 말했다. “돌아가는 게 아주 아사리판이다. 이 동네야 워낙 집값이 쉽게 내려가지 않지만, 자영업자들은 다들 죽을 맛이다.”


지난 대선 때 윤석열을 지지했지만 현재는 등을 돌린 주민도 있었다. 아크로비스타 인근에서 만난 30대 직장인 임준현 씨는 “부동산 때문에 서울에 집 있는 팀 동료들 14명 정도는 지난 대선 때 국민의힘을 지지했지만, 지금은 다르다. 문 정부 때 하도 오락가락하니까 윤석열은 낫겠지 했는데 그렇지도 않더라”라고 말했다.

파면 후 윤석열은 어디로 갈까?

대통령이 파면될 경우 대통령직이 곧바로 박탈되고 관저에 머물 자격도 사라진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은 탄핵을 선고받은 날로부터 이틀 후 청와대를 떠나 삼성동 사저로 돌아갔다. 다만 윤석열의 거취는 예상하기 어렵다. 공식적으로 사저를 정해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통령실 차원에서 사저에 대한 언급은 2024년 9월5일이 마지막이다. 당시 대통령실은 ‘정부가 대통령 퇴임 후 사저와 경호시설 마련을 위해 140억 원 예산을 책정했다’는 언론 보도에 대해 “아직 사저 위치가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향후 (사저 위치가) 결정되면 세부 예산안이 추가 조정될 예정”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현재로서는 파면 직후 일단 취임 전에 살던 아크로비스타로 돌아갈 가능성이 존재한다. 가능성이 현실이 된다면, 아파트 공간이 ‘퇴임 후 대통령 사저’로 지칭되는 최초 사례가 될 것이다.


파면 후 윤석열이 불구속 상태에서 아크로비스타에 계속 머문다면, 일종의 ‘사저 정치’를 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은 지난 3월18일 SBS 라디오에 출연해 “(탄핵이 인용될 경우 윤석열은) 거주하는 곳이 아크로비스타로 바뀌고 그곳에서 사저 정치를 할 것이다. (정치인들이) 사저 출입 여부 같은 걸로 자신의 ‘윤심’을 드러내려고 할 테다”라고 말했다. 그렇게 되면 한남동 관저 앞에 각종 극우 유튜버와 지지자들이 몰리는 것처럼, 아크로비스타 역시 극우 지지층이 집결하는 주요 집회 현장이 될 수도 있다. 윤석열 첫 체포 과정처럼 물리적인 충돌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이런 관측에 대해 주민들은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날 아크로비스타에서 만난 70대 여성은 “다시 돌아오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탄핵당해도) 굳이 여기로 오겠나”라고 말했다. 같은 자리에서 만난 한 50대 여성은 정치권의 관측에 대해 “윤석열이 여기로 돌아와 사저 정치한다는 것도 이준석의 망상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파면 이후 윤석열에 대한 형사재판이 본격화될 경우 다시 구속 수감될 가능성도 있다. 박근혜 탄핵 당시에는 사저에 도착한 지 19일 만에 구속영장이 청구되어 서울구치소에 수감된 바 있다. 형이 확정된 후 사면될 때까지 4년9개월 간 그의 서울 삼성동 사저는 대중들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결국 윤석열의 구속 여부가 아크로비스타의 고요한 분위기를 깨트릴지를 결정 지을 핵심 열쇠다.

권은혜 수습기자 kik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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