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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대 졸업 후 군 입대를 앞둔 시기. 편의점에서 새벽 시간에 석 달 일했다. 내 유일한 서비스업 경력이었다. 몸은 편한데 마음이 피곤했다. 최저임금도 안 주고 CCTV로 일거수일투족 감시하는 사장 부부는 상수요, 만취해서 들어오는 손님들은 변수였다.
특히 공장 일만 했던 내게 밉상 손님 대면은 다시 겪기 싫은 끔찍한 경험이었다. 특별히 잘못하지 않아도 비난받는 상황에 도무지 적응할 수가 없었다. 며칠 밤잠 제대로 못 자게 한 기억을 남긴 손님도 있었다. 15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행색이 똑똑히 기억난다. 남색 폴로 칼라 티셔츠에 베이지색 바지, 제법 번듯한 차림의 노년 남성은 내게 “못 배워먹어서 편의점 알바나 하 든든학자금대출 상환 는 주제에 담배 이름도 똑바로 못 알아듣냐”며 혀 꼬부라진 발음으로 비난했다. 나도 지지 않고 담배 하나 팔아봐야 100원도 안 남으니 손님 행세 말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바로 옆에 파출소 있으니 시시비비 가려보자며 악다구니도 썼다. 손님은 결국 혼잣말로 욕하며 가게를 나갔다. 분명 통쾌한 승리여야만 했건만. 기분 개운하긴커녕 좀처럼 일이 손에 잡히질 않았 경희대 기숙사 다. 분이 풀리지 않아서가 아니라 감정을 소비한 사실이 아까웠다. 나는 왜 죄송하다고 말하지 못했을까. 그 한마디로 상황이 훨씬 쉽게 끝났을 텐데 말이다.
며칠을 지새우며 생각한 끝에 내 나름의 해답에 다다랐다. 당시 내 자의식은 크게 상처받았다. 자의식이란 무엇일까. 각자 마음의 담벼락이 아닐까. 갑질이란 무엇일까. 타인의 담벼락에 낙서 ibk저축은행 하는 행위가 아닐까. 사과란 무엇일까. 내 담벼락에 적힌 낙서를 청소하는 행위 아닐까. 자의식이 약할수록, 내 마음의 담벼락 면적이 낮고 좁을수록 사과도 훨씬 쉽다. 이후 사람들 앞에서 자의식을 누르려 애썼다. 부당한 일을 당해도 먼저 사과하려 노력하게 됐다. 내 잘못 아닌 잘못을 인정했다는 사실보다, 상대방과 열 올리는 상황과 시간이 내 마음을 더 다치게 수목드라마 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많은 일을 ‘죄송합니다’ 한마디로 진화할 수 있었다. 사과는 인간관계에 서툰 내가 가진 몇 안 되는 처세술이었다.
30대 초반쯤 소셜미디어를 접하고 연이어 서울살이까지 겹치며 접촉하는 사람들 폭이 달라졌다. 공장과 달리 가방끈 긴 사람을 많이 알게 됐다. 똑똑함과 자기 감정을 잘 다스리는 영역이 별개임도 알게 됐 내집마련 생애첫대출 이자 다. 자의식이 강해 고개 한번 숙여 끝낼 상황을 끝까지 피곤하게 만드는 사람이 많았다.
물론 사과만으로 풀어나갈 수 없는 영역은 분명 있다. 정말로 잘잘못을 따져야 할 일도 많다. 그럴 땐 함부로 고개 숙여선 안 된다. 사과가 꼬투리 잡힐 거리일 뿐이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많지 않다. 오히려 사과를 아끼거나 대충 해서 호미로 막을 일 가래로도 못 막는 상황에 직면한다. 2022년 정용진 신세계그룹 당시 부회장은 뜬금없이 인스타그램에 “멸공”이란 게시물을 올렸다가 비판받았다. 논란이 되니 정용진 부회장은 사과 대신 앞뒤 안 맞는 해명으로 일관했다. 여파가 정치권까지 퍼지고 급기야 불매운동까지 이어질 뻔하자 그제야 사과 글을 올렸다. 되로 갚을 빚, 말로 갚은 셈이다.
반면 시의적절하고 잘 쓴 사과문은 사건 해결의 지름길이 되기도 한다. 2015년 메르스 창궐기, 삼성병원은 초기 대응을 잘못해 비판받았다. 이재용 당시 삼성그룹 부회장은 본인 명의로 사과문을 발표했다. 구성은 완벽했고 문장엔 군더더기가 없었다. 이후 비판 여론은 한풀 꺾였다. 그뿐 아니라 지금까지도 잘 쓴 사과문의 정석으로 꼽힌다.
사과는 양보의 미덕이다. 특히 많이 해볼수록 쉽게, 시의적절하게 꺼낼 수 있다. 우려스러운 것은 사람들이 점점 사과하는 경험을 할 일이 줄어든다는 점. 특히 요즘 게임과 소셜미디어는 매우 마음 편한 기능을 제공한다. 차단 한 번으로 꼴 보기 싫은 인간을 영영 내 삶에서 지울 수 있다. 이로써 타인과 맺은 관계에서 한 발자국 물러서야 할 요인이 아예 사라졌다.
자기 계발 분야도 마찬가지다. 사과로 끝낼 상황과 하면 안 될 상황을 구별하는 지혜를 공유하지 않는다. 자의식 대신 자존감을 키우라는 따뜻한 조언이 실종됐다. 대신 애초에 성공해서 처음부터 남한테 흉 잡힐 구실을 아예 주지 말자고 주장한다. 정보가 많아지고 지식이 넘쳐나지만 미안하다는 한마디는 듣기 어려워져 가는 시대. 이게 과연 사람 살기 좋은 세상이 맞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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