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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선거 전 내놓은 공화당의 공약집(2024)에서 “중동”은 단 두 차례 등장할 뿐이다. “중동의 평화를 회복해야 한다는 것”과 “이스라엘과 함께하겠다”는 원론적인 이야기뿐이다. 2023년 10월7일 발발한 가자 전쟁의 포화는 1년이 지나도록 멈추지 않고 있고 조 바이든 행정부는 해법을 찾지 못했다. 트럼프 당선자도 다민족, 다종교, 다문화의 ‘다자 방정식’ 중동 문제 해결 찾기란 초고난도 문제일 수밖에 없다.
이런 전략은 대선에서 일정 부분 효과를 본 것으로 보인다. 11만명의 주민 중 아랍계가 절반가량 거주하는 미시간주 디어본 카운티에서 트럼프가 예상 밖 승리를 거둔 것은 상징적 장면이었다.
모호한 태도와 종잡을 수 없는 발언들을 뒤로하고 트럼프가 당선 뒤 지명 또는 임명한 중동 관련 차기 행정부 인사를 보면, 1기 때와 유사한 기조를 이어갈 것이라는 예측을 할 수 있다. 주이스라엘 대사로 임명된 마이크 허커비는 “팔레스타인인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극단적 친이스라엘 인사다. 유엔 대사 자리를 거머쥔 엘리스 스터파닉도 친이스라엘 인사로 꼽힌다.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과 마이크 왈츠 국가안보보좌관은 대중국 강경파이자 반이란 강경파다.
트럼프 당선자는 1기 집권(2017년 1월~2021년 1월) 때 기독교·유대교·이슬람 공동의 성지인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인정하는 등 극단적인 친이스라엘 정책을 펼쳤다. 이란에 대해서는 전임인 버락 오바마 정부가 맺었던 이란 핵협정인 ‘포괄적 공동행동계획’(JCPoA)을 파기하며 대립했다. 2020년에는 이스라엘과 아랍에미리트(UAE), 바레인, 수단, 모로코 아랍 4개국의 수교를 이끌어낸 ‘아브라함 협정’을 맺어 이스라엘의 입지를 강화했다. 아브라함 협정의 완성은 이슬람 수니파의 맹주 격인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스라엘의 수교인데, 2023년 10월7일 가자 전쟁 발발로 사우디는 이스라엘과 수교 협상을 잠정 중단했다.
돌아온 트럼프 당선자는 자신의 치적으로 꼽히는 아브라함 협정을 완성하고 싶어 하며, 이를 위해서라도 1년 넘게 계속되는 가자 전쟁이 일단락되어야 한다. 지난 10월 이스라엘 매체 ‘타임스 오브 이스라엘’은 트럼프 1기 행정부에서 일했던 전직 미국 관료 등의 말을 인용해 트럼프가 7월 플로리다 마러라고 리조트로 자신을 만나러 온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에게 “나의 재집권 전까지 전쟁을 끝내기를 바란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네타냐후 총리가 1월20일 취임식 전까지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와 휴전을 할지를 속단할 수 없지만, 네타냐후가 트럼프의 요구를 들어주면서 이스라엘에 유리한 내용을 취하려 할 가능성이 있다.
임기 중반 이후부터는 유동적일 수 있다. 평생을 성과주의·자기중심주의를 지키며 살아온 트럼프 당선자에게 ‘초고난도 문제’인 중동이 성취욕을 자극할 수 있다. 이번이 마지막 임기인 것을 고려할 때 오바마 전 대통령이 받은 노벨 평화상을 얻고자 큰 판을 바꾸는 거래를 할 수 있다. 보수 미국인과 서방이 생각해오던 ‘악의 축’(이란·이라크·북한) 중 하나인 이란과 이스라엘의 관계 재설정 여부도 그중 하나가 될 수 있다.
트럼프는 10월 말 사우디 방송 알아라비야 텔레비전과의 인터뷰에서 아브라함 협정에 이란을 끌어들일 수 있다고도 내비쳤다. 그는 이 인터뷰에서 “내가 대통령이 되면 모든 사람들을 끌어들일 것이다. 중동의 평화가 우리에게 필요하고 매우 중요하다. 그건 이루어질 것”이라며 “사우디아라비아 국왕과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는 선견자이며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을 일을 해냈다”고 말했다. 또 “(내가 2020년 대통령 선거에 이겼다면) 나는 이란과 거래를 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2023년 10월7일 가자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다”며 이란과의 거래 가능성을 언급했다. 시리아 아사드 정권 붕괴 그리고 레바논 시아파 무장정파 헤즈볼라 약화로 중동의 ‘시아파 벨트’를 운영하기 어려워진 이란이 트럼프와 협상에 나선다면 중동 판세가 급변할 가능성이 있다.
인남식 외교안보연구소 전략지역연구부장은 “공화당의 아들 부시 대통령이나 민주당의 오바마 대통령이 채찍과 당근으로 이란을 바꿔보려 했지만 실패했다. 전쟁을 싫어하는 트럼프가 외교적 압박과 밀당을 통해 이란을 변화시켜 자신의 힘을 과시할 수 있다. 자신이 그려왔던 더 큰 아브라함 협정의 완결과, 비록 이스라엘에 유리한 안일지라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영토의 평화적 분리(두 국가 해법)를 이뤄낸다면 그만의 업적이 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