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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젠하워 “내가 책임” 윤리적 비판 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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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년 페이퍼클립을 통해 미국으로 이주한 베르너 폰 브라운(앞줄 오른쪽에서 일곱 번째)을 포함한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과학자와 엔지니어들. [사진 NASA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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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부터 이들을 극비리에 미국으로 데려오기 위한 작전이 시작됐다. 바로 페이퍼클립 작전(Operation Paperclip)이었다. ‘나치과학자 명단을 모아놓은 서류클립’에서 작전명을 따 우리수협 왔다. 이 작전의 여정 속으로 들어가 보면 미국이 어떻게 과학기술 강국이 됐고 경제와 산업을 부흥시켰는지 비밀이 조금 풀린다.

1945년 5월 28일 미 육군차관 로버트 패터슨은 트루만 대통령의 최고 참모(Chief of Staff to the President)인 윌리엄 레이히를 만났다. 알소스팀으로부터 나치 과학자 농협대출상담사 들의 첨단무기 개발 현황을 보고받은 후 이들을 비밀리에 데려오자고 건의하기 위해서였다. 건의를 들은 레이히도 흔쾌히 동의했다. 이로써 나치 과학자들을 미국으로 이주시키기 위한 작전이 본격화됐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걸림돌이 나타났다. 국무부와 법무부가 제동을 걸었다. 아무리 탐나는 과학 인재라 하더라도 나치 부역자들을 데려오는 것은 미국이 추구하는 민주주의 이상과 맞지 않다는 이유에서였다. 특히 나치 전범들에게 일방적으로 면죄부를 주는 것은 심각한 법적, 외교적 논란을 일으킬 수 있다며 반대했다.
그러나 포기할 수 없었던 국방부는 이들을 일시적으로 활용한 후 다시 독일로 돌려보내겠다고 설득해 극복했다. 그 결과 1945년 8월 나치과학자 127명이 1년 계약으로 어렵게 미국에 입국했다. 그런데 이즈음 예상치 못한 호재가 나타났다. 소련도 나치과학자를 은밀하게 데려가기 시작했다. 오소아비아힘 작전(Operation Osoaviakhim)으로 나치 과학자들을 아예 모스크바로 집단 이주시키는 비밀 작전이었다.
이때부터 미국 내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다. 나치 과학자들을 소련에 빼앗기면 유도 미사일 등 첨단무기개발이 순식간에 역전당하므로 무슨 수를 써서라도 핵심인재는 미국이 먼저 확보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확산됐다. 호기를 맞은 국방부는 이때다 싶어 이 작전을 전담할 합동정보목적국(JIOA)을 신설하고 여기에 OSS(CIA의 전신)도 포함시키는 등 조직을 확대했다. 또한 미국으로 데리고 올 나치과학자 대상도 확대했다. 모든 것이 확대된 2단계 작전이 시작됐다.
그런데 이번에는 여론의 반대라는 복병이 나타났다. 1945년 10월부터 2차 대전 전범들을 단죄하기 위한 뉘른베르크 국제재판이 시작되자, 나치 전범들의 비윤리적 행위들이 속속 드러나면서 나치과학자 활용에 대해서도 윤리적 비판이 빗발쳤다. 특히 유대인 사회와 지식층의 반대가 컸다. “아무런 죄의식 없이 유대인 집단학살에 부역한 나치 과학자들을 미국에 데려오겠다는 발상 자체가 미국이 윤리적 타락의 늪에 빠지는 신호”라며 반발했다. 아인슈타인까지 나서 이 계획을 취소해 주도록 트루먼 대통령에게 청원했다. 그러나 작전을 총지휘한 아이젠하워 육군참모총장은 단호한 리더십을 통해 돌파했다. “윤리적 비판을 이해하지만, 모두 내가 지시한 것으로 책임질 일이 있으면 내가 책임지겠다”며 강행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폰 브라운 박사는 20세기 우주 탐사의 가장 중요한 로켓 개발자로 손꼽힌다. [사진 NASA 홈페이지]







아이젠하워의 책임지는 리더십을 통해 여론의 장애를 극복하자 작전은 급물살을 탔다. 소련의 나치과학자 빼내가기 차단 등 주춤했던 작전들이 활기를 되찾았다. 특히 이들을 미국으로 이주시키는데 가장 장애물이 된 나치참여 이력을 적극 해결했다. 주로 나치기록 은폐나 이력 세탁 등 일탈적 방법이 동원됐다. 가령 나치의 로켓개발을 주도한 베르너 폰 브라운은 나치 고위당원이었을 뿐만 아니라 로켓개발 과정에서 수천 명의 노동자들을 사망케 했으나, 미국은 나치의 고위당원이 아니라 평당원이었을 뿐이며 노동자 사망 증거문서들은 모두 분실됐다며 기록 자체를 없애 버렸다. 나치의 생물무기 책임자로 다하우 수용소에서 생체실험을 주도했던 쿠르트 블로메에 대해서도 생체실험기록을 삭제한 후 ‘의학연구자’로 신분을 세탁해주었다. 특히 1948년부터 이 작전을 주도한 CIA는 국무부의 엄격한 입국심사 때문에 미국 입국이 어려운 나치 과학자에 대해 ‘국익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자’라는 내용을 첨부해 입국시켰다. 이처럼 미국이 필요로 하는 과학자에 대해 모든 입국 걸림돌을 제거해 주었다.

이즈음 미국 여론도 조금씩 현실론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여기에는 상무장관 헨리 월리스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군사과학자들만 데리고 오면 악마와 손잡는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으니 산업과 서민 일자리 창출에 기여할 나치기술자들도 데리고 오자고 제안했다. 이어 나치과학자들을 미국 경제의 자산으로 편입시켜 국부 창출의 새로운 동력으로 활용하자는 여론도 띄웠다. 그러자 페이퍼클립 작전에 소극적이었던 트루먼 대통령도 이 구상을 승인했다. 이에 효모를 무제한 생산할 수 있는 식료기술자, 실이 풀리지 않는 여자 스타킹 제조기술자 등 서민경제에 필요한 과학기술자들도 미국에 들어왔다. 이로써 페이퍼클립 작전이 경제·산업분야로까지 확장됐다.
이후 1960년대까지 작전이 진행되는 동안 1600여 명의 나치 과학기술자들이 미국에 입국했다. 그리고 이들의 기여는 군사·과학·산업 등 분야마다 눈부셨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독보적으로 발전시켜 전후 미국의 군사적 패권확보에 결정적 기여를 했고, 1969년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과 NASA의 우주프로그램을 주도하는 등 미국을 과학기술 강국으로 이끌었다. 또한 합성연료·광학기술·정밀산업도 발전시켜 오늘날 미국 사회의 물질적 풍요를 뒷받침했다. 한마디로 페이퍼클립 작전은 단순히 군사력 발전을 넘어 전후 미국의 국력 성장에 중요한 에너지로 활용됐다.









정보전쟁







이 과정에서 윤리적 저항 등 난관도 있었다. 그러나 소련의 나치 과학자 집단 이주작전이 페이퍼클립 작전의 정당성 명분을 제공하는 등 의도치 않게 난관을 극복하는데 힘을 보태주었다.

물론 미국의 윤리적 자성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미 정부 합동그룹(IWG)이 미국의 나치전범 활용 실태 등을 조사해 발표한 ‘미국 정보기관과 나치’ 보고서(2005년)에서 “우리는 가장 악독한 나치전범의 도움을 받아 전후 시대를 시작했다. 이것이 타당했는지는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썼다. 미국의 공식 자기반성문이다. 오늘날 미국의 풍요가 윤리적 희생 위에 이루어졌음을 잊지 말자는 의미기도 하다.
‘사람이 곧 국익이고 안보’ 새 지평 열어 미국 사회도 성숙하게 대응했다. 비판은 비판대로 수용하되 나치 과학자들이 미국 사회에 기여한 노고에 대해서는 박수와 존경을 보냈다. 미 우주로켓 센터가 ‘우주과학 명예의 전당’에 나치과학자 베르너 폰 브라운, 오스카 홀더러 등의 이름을 올려준 것이 대표적이다. 국방부·상무부·NASA 등도 이들의 기여를 공식 인정했다.
페이퍼클립 작전은 정보사(史)적으로도 의미가 크다. ‘사람이 곧 국익이고 안보’라는 새로운 정보 지평을 열었다. 그래서 고급인재 확보전(戰)이 정보기관의 중요한 임무가 됐다. 지난 10월 미국이 ‘AI 국가안보각서(NSM)’를 발표하면서 AI인재 확보전에 정보기관의 역할을 강조한 것은 이를 말해준다. 중국의 해외인재 영입프로그램인 천인계획(千人計劃)도 마찬가지다. 중국 정보기관이 뒷받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앞으로 국운을 좌우할 AI·디지털 등 첨단 과학기술 경쟁 시대를 맞아 미·중간 인재확보 정보전이 치열해질 것임을 예고한 것이기도 하다. 어수선한 정국 분위기 속에서도 우리 관계당국이 주시해야 하는 이유기도 하다.














최성규 고려대 연구교수. 국가정보원에서 장기간 근무하며 국제안보 분야에 종사했다. 퇴직 후 국내 최초로 비밀 정보활동의 법적 규범을 규명한 논문으로 고려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